노을시간이 정리한 한 페이지
나는 전남 해남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. 어린 시절의 하루는 늘 이른 새벽에 시작되었다. 아버지가 방문을 조용히 여시면,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눈으로 따라나섰다. 논으로 가는 길에는 흙냄새가 먼저 올라왔다. 그때는 그 시간이 고단하기만 했다.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야 하는지, 왜 하루가 늘 일로 시작되는지 알지 못했다. 그런데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은, 이상하게도 그 새벽 공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. 말없이 앞서 걷던 아버지의 등, 물기 어린 논둑, 멀리서 밝아오던 하늘. 힘든 줄만 알았던 그 시간이, 내 삶의 첫 장면으로 남아 있다.
